어쩔 수가 없다 리뷰 총정리 (구조조정, 자기합리화, 이병헌)
마지막 회를 보고 나서도 한동안 다른 드라마를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JTBC 드라마 괴물은 20년에 걸친 연쇄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서로를 의심하는 두 형사의 심리 싸움을 끝까지 팽팽하게 이어가는 작품입니다. 범인이 누구인지보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가 더 오래 머릿속에 남는 드라마였습니다.
괴물을 두고 반전이 뛰어난 스릴러라고 평가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이 드라마의 진짜 힘은 반전 자체보다 의심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보여주는 방식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냥읍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한 번 생긴 의심이 어떻게 공동체 전체를 서서히 무너뜨리는지, 그 과정이 매회 조금씩 더 선명해졌습니다.
경사 이동식과 신임 경위 한주원이 파트너로 붙는 설정 자체가 이미 갈등의 씨앗입니다. 주원은 동식을 20년 전 사건의 용의자로 보고 있고, 동식은 주원이 자신을 캐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를 믿지 않으면서도 함께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죠. 이 구조가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시켜 줍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꼈던 건, 회차가 쌓일수록 시청자인 저 스스로도 계속 의심의 방향이 바뀐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동식이 수상했다가, 그다음엔 진묵이, 그다음엔 정제가 의심스러워졌습니다. 이건 단순히 복선을 잘 심어놔서가 아니라, 인물 각자의 행동에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심리적 서스펜스(psychological suspense)란 물리적 위협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과 판단 안에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기법인데, 괴물은 이것을 아주 정교하게 구사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도 그런 경험이 있지 않으신가요? 처음 인상만으로 누군가를 단정 지었다가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었던 경우 말입니다. 저도 그런 기억이 있어서, 동식과 주원 사이의 오해가 단순한 드라마 설정이 아니라 꽤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괴물의 등장인물들은 선과 악으로 깔끔하게 나뉘지 않습니다. 이 점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이동식은 마냥에서 '못 말리는 또라이 경찰'로 불리지만, 그가 법 조항을 외워가며 화투판을 단속하고 클럽에서 민정을 구해오는 장면들을 보면 그 행동 안에 담긴 진심이 보입니다. 그 반면 범인을 잡기 위해 스스로 법의 경계를 넘는 모습도 함께 보여줍니다.
한주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경찰대 수석, 본청 소속 엘리트, 차기 경찰청장 아들이라는 배경을 가졌지만, 금화를 사지로 내몰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습니다. 그 죄책감이 그를 더 집요하게 만들기도 하고, 더 무너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엘리트라는 외형과 내면의 균열이 공존하는 인물입니다.
괴물이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캐릭터 유형은 방관자(bystander)입니다. 방관자란 직접 범행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침묵과 외면으로 비극을 이어가도록 내버려 둔 인물을 뜻합니다. 드라마에서 상배는 20년 전 동식을 의심했고, 정제는 진묵을 알면서도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들이 선하냐 악하냐를 따지는 것보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보는 게 훨씬 더 서늘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괴물이 묘사하는 인물 유형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이 구성을 보면서 드라마가 단순히 범인 찾기가 아니라 인간의 선택과 책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각 인물이 어떤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괴물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드라마 속 심리 묘사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범죄 심리학에서 말하는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 개념을 함께 떠올려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도덕적 이탈이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심리 기제로, 타인의 고통을 축소하거나 자신의 책임을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사회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체계화한 개념인데, 괴물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자기합리화 방식과 꽤 일치합니다.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괴물의 사건 구조는 단발 살인이 아니라 20년에 걸친 연쇄살인(serial homicide)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연쇄살인이란 일정 기간 동안 세 명 이상을 각각 다른 시점에 살해하는 범행 패턴을 뜻하며, FBI 범죄 분류 기준에서도 별도의 수사 체계를 적용합니다. 이 설정이 드라마에 주는 가장 큰 효과는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수사 대상이 된다는 점입니다.
주원이 최근 발견된 사체와 20년 전 방주선 사건을 연결짓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단순한 현재 사건 수사에서 역사적 진실 추적으로 넓어집니다. 그리고 그 20년의 공백이 단순한 잠복기가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피해자가 더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이어지면서 이야기의 밀도가 급격히 높아집니다. 정육점 사장 제이의 어머니 한정임이 10여 년 전부터 실종 상태라는 사실이 그 공포를 한층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줍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동식이 민정의 손가락을 발견하고도 신고를 하지 않는 장면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는데, 뒤에 그 이유가 밝혀지면서 오히려 그 침묵이 얼마나 치밀한 판단에서 나온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사체 없는 살인으로는 기소가 어렵고, 불법으로 수집된 증거는 법정에서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동식은 직접 함정을 설계한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현행 형사소송법의 위법수집증거 배제 원칙(exclusionary rule)을 실제로 극 안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위법수집증거 배제 원칙이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수집된 증거는 법정에서 증거 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말합니다. 이 원칙이 범죄자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일 때, 정의를 원하는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이 드라마는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초반 전개가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도 솔직히 인정합니다. 등장인물이 많고 복선이 촘촘하게 깔려 있어서 처음 세 회 정도는 집중하지 않으면 맥락을 놓치기 쉽습니다. 빠른 전개를 선호하는 분이라면 중간에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본 뒤에 돌아보면, 초반의 모든 장면이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게 이 드라마의 방식입니다.
Q. 드라마 괴물에서 진짜 범인이 누구인가요?
A. 핵심 범인은 마냥 슈퍼 주인 강진묵입니다. 동식의 오랜 친구이자 가장 신뢰받는 인물로 위장해 오랜 시간 의심을 피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사람이 범인이라는 설정이 드라마 전반의 의심 구조와 맞물려 더 큰 충격을 줍니다.
Q. 이동식이 범인이 아닌데 왜 처음부터 용의자처럼 행동했나요?
A. 동식은 진묵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에도 신고하지 않고 직접 함정을 만들려 했습니다. 사체가 없으면 살인 기소가 어렵고, 불법 수집 증거는 법정에서 효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자신이 용의자처럼 보이도록 움직이며 증거를 만드는 설계를 한 것입니다.
Q. 한주원은 왜 굳이 지방 파출소로 발령을 자원했나요?
A. 주원이 조사하던 연쇄살인 사건이 20년 전 이동식 관련 사건과 연결된다는 단서를 잡은 뒤, 동식이 있는 마냥 파출소로 전입 신청을 한 것입니다. 경찰청장 아들이라는 배경과 전혀 맞지 않는 자원이어서 주변의 의아함을 사기도 합니다.
Q. 드라마 괴물은 원작이 있나요?
A. 괴물은 별도의 원작 없이 처음부터 JTBC 오리지널로 제작된 드라마입니다. 2021년 2월부터 4월까지 방영됐으며, 조현탁 감독과 김수진 작가가 의기투합한 작품입니다. 연출과 각본 모두 오리지널이라는 점에서 더 탄탄한 구조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말이 나온 뒤에도 시원하다는 느낌보다 씁쓸함이 먼저 들었습니다. 범인이 잡혔다고 해서 사라진 사람들이 돌아오지는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상처가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괴물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침묵과 외면이 반복되는 순간 누구나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마지막까지 무겁게 남았습니다. 스릴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그냥 범죄 드라마로 시작해서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끝나는 이 작품을 한 번 꼭 봐보시길 권합니다.
--- 참고: https://youtu.be/vxULy1sEtlM?si=tlKWPLq0BhY3WpV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