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 리뷰 총정리 (구조조정, 자기합리화, 이병헌)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청소년 성장물이라는 장르를 조금 얕봤습니다. 어차피 첫사랑, 우정, 졸업으로 끝나는 이야기겠거니 했는데, 월플라워는 그 예상을 처음 30분 만에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웃음이 많은 장면에서도 묘하게 불편한 감정이 따라다녔고, 다 보고 나서는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월플라워(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에서 주인공 찰리는 고등학교 첫날부터 눈에 띄지 않으려 애씁니다. '월플라워(wallflower)'란 벽에 기대 혼자 서 있는 사람, 즉 파티나 군중 속에서도 어울리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 단어 하나가 찰리의 성격을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찰리는 중학교를 마치기 1년 전, 유일한 친구 마이클을 자살로 잃었습니다. 그 충격으로 한동안 입원 치료를 받았고, 고등학교 입학은 부모님에게도 조심스러운 출발이었습니다. 저는 이 설정을 처음 접했을 때 "이 아이는 도대체 어떻게 하루를 버티는 걸까"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주변에 친구가 없는 것 자체보다, 그 빈자리가 죽음으로 생긴 것이라는 사실이 훨씬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찰리에게 변화의 계기를 만든 건 상급생 패트릭과 샘입니다. 두 사람은 찰리가 처음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제 학창 시절을 떠올려 봐도, 그런 사람 하나가 생기는 것만으로 등굣길이 달라지는 경험이 있었습니다.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되는 사람,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람. 찰리에게 패트릭과 샘이 딱 그런 존재였습니다.
영화는 찰리가 이 두 사람과 가까워지는 과정을 굉장히 천천히 보여줍니다. 급격한 사건보다는 미식축구 경기 뒤풀이, 댄스파티,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평범해 보이는 순간들 사이사이에 찰리의 표정이 조금씩 바뀌는 것을 관찰하게 만듭니다. 그 연출이 저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트라우마(trauma)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트라우마란 과거의 충격적인 경험이 현재의 감정과 행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상처를 말합니다. 월플라워는 이것을 극적인 플래시백이나 과장된 붕괴 장면으로 소비하지 않습니다. 대신 찰리가 친구들과 웃고 있다가 갑자기 멈추는 찰나, 누군가 자신을 만지는 순간 굳어버리는 표정 같은 아주 작은 균열들로 보여줍니다.
저도 힘든 시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 시간을 보내려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게 실제로는 감정을 해결한 게 아니라 그냥 쌓아둔 것에 불과하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찰리가 헬렌 이모에 대한 기억을 끝까지 외면하다 결국 무너지는 장면은, 제 경험상 이게 가장 현실적인 묘사라고 느꼈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드러나는 사실, 즉 찰리가 어린 시절 헬렌 이모에게 지속적으로 성적 학대를 당해왔다는 것은 이 모든 조각들을 한 번에 설명합니다. 억압(repression)이란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감정을 무의식 아래로 밀어 넣는 심리적 방어 기제입니다. 찰리는 그 기억을 너무나 깊이 억압해 두었기 때문에, 오히려 학대를 한 헬렌 이모를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믿어왔습니다. 이 아이러니가 영화에서 가장 무거운 지점이었습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아동기 성 학대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인식하는 데까지 평균적으로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이는 기억 억압 외에도 가해자에 대한 복잡한 감정, 주변의 침묵, 자기 보호 기제가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입니다(출처: The National Child Traumatic Stress Network). 찰리의 경우도 그 과정과 정확히 겹쳐 보였습니다.
월플라워가 이 주제를 다루면서 특히 잘 한 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후반부가 다소 급하게 마무리된 느낌이 있었습니다. 찰리가 과거를 마주하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인데, 그 이후 회복 과정은 상대적으로 짧게 지나갔습니다. 실제로 복합적 트라우마(complex trauma), 즉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학대나 방임으로 인해 형성되는 심층적 심리 상처는 한 번의 고백이나 입원으로 해소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심리치료와 지지 관계가 병행되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영화적 결말의 아름다움은 이해하지만, 그 부분만큼은 현실과 조금 거리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대사는 "We accept the love we think we deserve"였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의 사랑만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찰리가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집착하고, 거절을 못해 상처를 반복하는 이유가 이 문장 하나로 설명됩니다.
이 대사를 들었을 때 솔직히 조금 뜨끔했습니다. 사람이 반복적으로 비슷한 관계 패턴에 빠지는 건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라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건 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누구에게나 조금씩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기 효능감이란 자신이 어떤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뜻합니다. 찰리는 영화 내내 이것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앤더슨 선생님의 관심, 패트릭과 샘의 우정이 그것을 조금씩 쌓아가게 해줍니다. 이 영화가 결국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그 믿음은 혼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 하나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당신은 가까운 사람이 웃고 있을 때, 그 사람이 정말 괜찮은지 한 번이라도 물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 영화는 그 질문을 꽤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겨둡니다.
월플라워는 보는 사람의 나이나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른 영화로 읽힐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 봤을 때는 찰리의 고립감이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다시 보니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각자의 상처가 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화려한 반전 없이도 이렇게 오래 남는 영화가 있다는 게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한 번은 꼭 보시길 권합니다. 단, 마음이 조금 여유로울 때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참고: https://youtu.be/A7ZRIX2e60g?si=nShdwBvxZGI0PyQ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