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 리뷰 총정리 (구조조정, 자기합리화, 이병헌)
솔직히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그냥 자극적인 고어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2024년 개봉한 영화 서브스턴스는 칸 영화제 각본상, 골든 글로브 여우 주연상을 받은 작품인데, 상을 받을 만한 이유가 스토리를 다 보고 나서야 납득이 됐습니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소비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게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의 이야기였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과거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오를 정도로 인정받은 배우입니다. 하지만 50대가 된 지금은 아침 에어로빅 쇼 하나가 전부입니다. 그마저도 방송국은 "너무 늙었다"는 이유로 그를 내보내려 합니다. 아이러니한 건, 그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엘리자베스보다 더 나이가 많은 남성들이라는 점입니다.
저도 이 장면에서 꽤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나이 듦에 대한 잣대가 누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이 짧은 장면 하나에 다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이지이즘(Ageism)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나이를 이유로 특정 집단을 차별하거나 편견을 갖는 태도를 뜻하는데, 영화는 이걸 굉장히 직접적으로 묘사합니다. 특히 여성에게 집중되는 외모 기준과 연령 차별이 겹쳐지는 방식이 불편할 정도로 현실적이었습니다.
저 역시 SNS나 TV를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더 젊고 더 성공한 사람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게 특별히 외모에 집착해서가 아니라, 사회가 끊임없이 '더 나은 버전'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엘리자베스의 불안은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닙니다. 오랫동안 외부 시선에 의해 쌓여온 것입니다. 영화는 그 축적된 감정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잔인하게 보여줍니다.
실제로 외모와 나이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여성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여러 연구에서도 다뤄진 바 있습니다. 미국심리학회(APA)는 외모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자존감 저하와 신체 불만족으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영화가 그냥 픽션이 아니라는 걸 이 지점에서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서브스턴스(Substance)라는 약물은 사용자의 척추에서 새로운 개체를 탄생시킵니다. 그렇게 태어난 젊고 아름다운 '수'는 엘리자베스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규칙은 단순합니다. 수와 엘리자베스가 각각 일주일씩 번갈아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수는 규칙을 어기기 시작합니다. 엘리자베스의 척수액(脊髓液), 즉 척추 속 체액을 추가로 뽑아 자신의 활동 시간을 연장하는 겁니다. 그로 인해 엘리자베스의 몸은 점점 망가져 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영화가 정말 날카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수와 엘리자베스는 분리된 존재가 아닙니다. 둘은 같은 의식을 공유하는 하나의 존재입니다. 수가 원하는 것도, 시간을 연장하기로 선택한 것도, 결국 엘리자베스 자신의 욕망입니다. 영화는 이걸 계속 상기시킵니다. 엘리자베스는 수를 '타자(他者)', 즉 완전히 다른 존재로 취급하며 수의 이기심을 탓하지만, 사실 그건 자기 자신의 욕망을 외면하는 방어기제에 가깝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봐도 이 구조가 낯설지 않았습니다. 직장에서 무리하게 기준을 맞추려 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저도 비슷하게 행동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 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사실 그 선택을 한 것도 저였습니다. 영화는 그 자기기만의 구조를 엘리자베스와 수의 관계로 극단적으로 형상화합니다.
영화에서 수가 3개월 가까이 시간을 독점하면서 엘리자베스의 몸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됩니다. 허리는 휘고, 머리카락은 빠지고, 관절은 망가집니다. 이 장면들에 대해 단순한 고어(Gore) 연출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게 자기혐오(Self-Hatred)가 신체적으로 가시화된 상태라고 읽었습니다. 자기혐오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혐오하는 심리 상태를 말하는데, 엘리자베스가 점점 망가져 가는 몸은 그 감정의 결과물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 영화가 블랙코미디(Black Comedy)로 분류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고 봅니다. 블랙코미디란 비극적이거나 어두운 소재를 풍자와 유머로 다루는 장르인데, 서브스턴스는 자기파괴의 과정을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방식으로 보여주면서 오히려 더 섬뜩한 효과를 냅니다. 이런 연출 방식이 불편하다는 의견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심리 묘사보다 시각적 충격이 앞서는 면이 있어서, 현실적인 드라마를 기대한 분들에게는 다소 과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영화의 결말을 두고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수가 엘리자베스를 죽이고, 새해 전야제 MC를 맡으러 방송국에 가지만, 척수액 없이는 신체가 붕괴됩니다. 수는 남은 약물로 자신에게서 또 다른 개체를 만들어내지만, 그 개체는 기형적인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결국 엘리자베스의 얼굴만 남은 존재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명예의 전당 앞에서 소멸합니다.
이 결말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너진 것은 몸이 아니라 정체성(Identity)이라고. 정체성이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일관된 인식을 의미하는데, 엘리자베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질문을 회피했습니다. 젊고 아름다운 수로만 살고 싶었고, 늙고 초라한 엘리자베스는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그 결과 어느 쪽도 온전히 살아남지 못합니다.
아래는 이 영화를 통해 제가 정리한, 영화가 던지는 핵심 질문들입니다.
이 질문들에 정답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영화가 답을 주려는 게 아니라 질문을 남기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엘리자베스도 서브스턴스를 선택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영화에 대한 추가 정보는 출처: IMDb - The Substance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서브스턴스는 불편한 영화입니다. 보는 내내 편하지 않고, 다 보고 나서도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가장 무서운 적이 시간도 노화도 아니라 스스로를 끝없이 부정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너무 정직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볼 수 있으니, 고어 장면이 부담스럽지 않은 분이라면 한 번쯤 직접 보시고 어떻게 느끼셨는지 생각해보시길 권합니다.
--- 참고: https://youtu.be/0dXJ6vX1wzQ?si=Oi49EziHP9vGwSyO